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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서노트/국내

세상의 불편한 진실들 앞에서...

by 별아가 2011. 2. 8.

도가니
카테고리 소설 > 한국소설 > 한국소설일반
지은이 공지영 (창비, 2009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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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많다. 사람들은 그 진실들이 너무나 불편한 나머지 모른척, 못 본 척 눈을 감고 산다. 공지영의 소설 ‘도가니’는 바로 우리가 불편하게 여기는 진실을 정면으로 대면하게 만든다.

 

‘다음’에서 이 소설을 연재할 때도,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도 난 이 책을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. 그냥 그랬다. ‘즐거운 나의 집’을 읽고 실망했기 때문에? 아니면 작가를 좋아하지 않아서? 아니다. 그냥 싫었다. 그런데 어쩌다보니 이 책을 다른 책 살 때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덤으로 사게 되었고 결국 읽게 되었다.

 

사긴 샀으나 읽기까지도 시간이 많이 들었다. 하지만 한번 읽는 데 가속도가 붙으니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.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이 책을 외면하려고 애썼는지 알게 되었다. '도가니‘는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.

 

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하여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무척이나 불편하고 슬프고 괴롭다. 무력감과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. 어린 시절, 정의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건만 자라고 보니 그 정의는 존재하지 않더란 사실. 그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다. 그런데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데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겠는가? 난 이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았다. 어린 시절의 동화처럼 주인공들이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식으로 끝나지도 않을 거고 그래도 소설이니까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. 무엇보다 실화를 기초한 소설이 아닌가.

 

이 사건이 터졌을 때 기사를 읽고 경악하고 분노했다. 그러나 현대의 사건들이 그렇듯 이 사건들도 빠르게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.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. 어떤 경악스러운 사건들을 만나고 분노하지만 빠르게 잊어가는 현대인들.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. 당사자들이 아니라면, 내 일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의식들. 나도 그랬다.

 

공지영은 그 잊혀진 사건들을 다시 세상에 드러냈다.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. 글의 전개에 따라 울었고 분노했지만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나는 다시 체념했다. 어차피 세상은 이런 거니까. 우리 같은 소시민이 할 일이 없다. 주인공 강인호처럼 우리는 결국 체념할 수밖에 없는 거다.

 

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이런 의문이 솟아올랐다. 정말 그런가? 정말 체념하고 그냥 살 수밖에 없는 건가? 이건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?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정의든 양심이든 거기서 눈 돌리고 살 수밖에 없노라고 나도 비겁한 변명을 해야 g나는 걸까? 진실은, 결국 거짓말보다 힘이 약한가?

 

만약,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잘 모르겠다. 아마, 나도 강인호처럼 될 지도 모른다. 그러나 난 서유진의 말을 기억한다. 가장 두려운 것은 세상이 나를 바꾸는 거라는 것. 그렇다. 정말 무서운 것은 세상이 다 그런 거라고 체념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변해가는 내 자신을 보는 것이다. 나는 그게 싫다.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.

 

사실 나는 겁쟁이다. 나는 아무 힘이 없고 쉽게 분노하지만 쉽게 잊는 보통 사람 중에 하나이다.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배웠다. 아무리 불편한 진실이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걸. 기억해야만 한다는 걸. 진실의 힘이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는 한, 언젠가는 그것들이 모여서 큰 힘을 발휘할 거라는 걸.

 

나도 참 바보인가 보다. 현실은 다 그런 거라고 매번 실망하고 좌절하면서도 ‘혹시나...’하는 작은 희망을, 소망을 버리지 못하니까.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눈 돌리고 외면하질 못하니까. 그래도 나는 세상이 나를 바꾸도록 만들고 싶진 않다.

 

앞으로의 불편한 진실들 앞에서 외면하지도, 도망치지도 않을 용기를 가지고 싶다.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도록 싸우고 싶다. 그것이, 소시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고 언젠가는 더 큰 힘을 불러올 무기라고 생각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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